[굽이굽이 별천지] ⑥ 슬픔 서린 단종 유배길…'한반도 축소판' 선암마을까지

웰니스라이프 인터넷팀 승인 2023.06.10 13:32 의견 0

[굽이굽이 별천지] ⑥ 슬픔 서린 단종 유배길…'한반도 축소판' 선암마을까지
어음정·군등치·배일치…길목마다 깃든 전설과 역사 이야기

고령화하는 마을…뗏목·줄배 체험, 워케이션 성지로 단장 노력

지역소멸 우려에 "청장년 찾는 마을 조성 고심…자연경관 보호도"

[※ 편집자 주 =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의 발걸음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다시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듭니다. 강원도의 산과 강, 바다와 호수를 따라 굽이치는 길 끝에는 반짝이는 주민들의 삶이 모여 있습니다. 북적이던 발걸음은 지역소멸이라는 화두와 함께 잦아들고 있지만, 마을은 그 생생함을 되찾고자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갑니다. 길과 마을에 깃든 27개의 이야기를 연합뉴스가 1년 동안 격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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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유배지인 '청령포'로 향하는 배편 [촬영 강태현]

우뚝 솟은 암벽과 푸르른 나무로 가득한 산세, 그리고 이를 휘감아 흐르는 강물의 찬란함까지.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왠지 모를 아릿한 감정이 올라오는 이유는 세상에 가닿지 못한 조선시대 비운의 왕 단종(端宗, 1441∼1457)의 한이 굽이치는 길목마다 서려 있기 때문인 걸까.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강원 영월로 유배됐다가 이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일까. 단종이 한양에서 출발해 영월 청령포에 도착하기까지 7일간의 여정 중 영월에 들어오는 솔치고개에서부터 청령포까지 43㎞에 달하는 구간 곳곳에 어린 왕이 감내해야 했던 가슴 저릿한 슬픔이 엿보인다.

명승 제50호 청령포는 3면이 서강에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나머지 한쪽은 절벽이 가로막힌 섬과 같은 곳이다.

지금까지 유일한 출입로가 동쪽 자갈밭인 것만 보아도 '천연감옥'으로 불렸던 유배 당시 상황이 뚜렷하게 그려진다.

고작 만 16세의 나이로 이곳을 향해 발걸음 했을 단종의 모습에 마음이 애달프기도 잠시, 기암괴석의 절벽을 휘돌아나가는 강과 곳곳을 빼곡히 채운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진 멋진 절경이 그런 마음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자연이 선사하는 다채로운 풍광만큼이나 영월에는 단종이 남긴 흔적과 이야기도 한 보따리다.

지금까지도 영월에서 단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와 관련한 일화가 마을 곳곳에 가득하다.

단종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역사 속 한순간으로 들어가 있는 기분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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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단종 유배지 [촬영 강태현]

◇솔치재에서 청령포까지…500여년 뒤 따라가는 단종의 발걸음

영월 땅에 단종 행렬이 들어섰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마을 사람들은 곳곳에서 나와 눈물을 훔쳤다.

솔치재에서 시작한 유배길에 '통곡의 길'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1457년 6월. 양력 7월의 삼복더위에 단종과 50명의 군졸은 쓰라린 마음을 뒤로하고 고개에서 다시 고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모처럼 산 중턱 너른 터에 닿았는데, 샘터 옆 바위에 걸터앉아 이들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씻고 마치 감로주와 같은 샘물을 마셨다.

후세 사람들은 단종이 목을 축이고 간 그 장소에 '물미'라는 지명을 붙였고, 그 샘터는 '임금이 마신 우물'이란 뜻의 '어음정'(御飮井)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단종 일행은 역골 이정표가 있는 주막에서 눈물을 삼키며 밤을 보내고, 또다시 굽이친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호송 행렬은 술이 샘솟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주천 나루터를 지나 3층 석탑이 있는 탑거를 지났다.

유배지로 향하던 오랜 여독 때문인지 피로가 몰려오던 단종은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했는데, 바위에 걸터앉아 한양 쪽을 바라보던 그는 자신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사육신과 어머니 현덕왕후를 떠올리며 한참 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내 정순왕후에 대한 그리움도 사무쳤다. 천근같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험악한 고갯길을 넘어가면서도 애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단종이 지나간 이 험한 길은 '임금이 오른 고개'라 하여 '군등치'(君登峙)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가파른 길과 굽이진 산을 넘던 단종은 서산으로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승하하던 순간까지 자신을 걱정하던 아버지 문종과 어머니 현덕왕후, 사육신들을 떠올렸다.

단종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서산에 기우는 해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배일치'(拜日峙)라고 칭하고 고개를 숙여 절하는 단종의 동상을 만들었는데, 비가 내리면 물이 얼굴의 코끝을 타고 흘러내려 마치 눈물을 흘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단종은 아내 정순왕후의 고운 모습을 닮아 이름 붙인 '옥녀봉'(玉女峰)과 높이 약 70m에 이르는 '선돌'을 지나 마침에 창덕궁 돈화문을 출발한 지 7일 만에 곤하고 긴 유배행렬을 마치고 청령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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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서 바라본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 [촬영 강태현]

◇단종도 거쳐 간 '한반도 뗏목 마을'…주민들 본캐는 '농부' 부캐는 '사공'

단종 유배 행렬은 청령포에 향하면서 지금의 한반도면 면사무소 소재지를 거쳤다.

당시 한반도면에 거주하던 백성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눈물로 단종을 맞이했다고 알려져 있다.

억울하고 서러운 단종의 착잡한 마음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울음 때문이었을까.

그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호송 행렬에 있던 말의 목에서 말방울이 떨어졌다.

이 일화를 계기로 말방울이 떨어진 지점에 '방울재'라는 이름이 생겼다.

방울재로부터 약 2.5㎞ 떨어진 곳에는 3면이 강물로 둘러싸인 습지가 있다.

깊은 골짜기를 이루며 흐르는 감입곡류천의 침식작용에 의해 생겨났는데, 마치 한반도를 축소해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을 고스란히 닮아 절벽 지역은 동쪽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서쪽에는 서해처럼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심지어 동쪽으로 울릉도, 독도를 닮은 듯한 바위까지 자리 잡고 있다.

백두대간격 능선의 중간쯤에는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는 큰 구멍이 뚫린 구멍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덕분에 동네 여성들이 바람이 나지 않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내려오기도 하고, 안쪽으로는 6·25 전쟁 시기 주민들이 피난지로 삼은 방공호 동굴도 있어 슬픈 역사가 공존하기도 한다.

명승으로도 지정된 한반도지형은 독특한 지형적 특성 탓에 영월에서 청령포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이런 특수성을 반영해 2009년 '서면'이었던 지역명이 지금의 '한반도면'으로 바뀌었다.

한반도지형을 닮아 '한반도 뗏목 마을'로도 알려진 이곳은 한반도면 옹정리에 있는 선암마을이다.

'선암'(仙巖)이라는 마을 이름은 깎아지른 절벽을 병풍 삼아 신선들이 머물다 갔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마을에 사는 95가구 157명의 주민은 대부분이 고추, 감자, 옥수수 등 농작물을 키우며 생활하고 있다.

고작 20여년 전만 해도 10여 가구에 불과했던 한적한 마을은 2000년대 한반도지형이 알려지면서 그 규모가 커졌다.

마을 이름과 걸맞게 선암마을에서는 한반도지형을 가까운 곳에서 구경할 수 있는 뗏목 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자연을 감상하기도 하고 직접 뗏목의 노를 저어보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두 개의 영농조합을 운영하며 때로는 농부로, 주막의 주모로, 때로는 뱃사공이 되어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실제 사공으로 활동하는 주민들은 수상레저, 인명구조 자격증도 보유해 안전한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농부이자 사공인 주민 서인석(63)씨도 단종과 관련한 이야기는 물론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구수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관광객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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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이자 사공인 선암마을 주민 서인석(63)씨 [촬영 강태현]

◇늙어가는 마을…목표는 '청장년을 다시 마을로!'

최근 주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마을이 늙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평균 연령 70세. 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 50대가 된 지 오래다.

군 전체로 보면 인구수 감소와 청년 유출도 심각해 주민들은 그런 상황이 단순히 '남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실제 1960년대 12만여명이었던 군의 인구는 올해 2월 말 기준 3만7천561명으로 줄었다.

사람이 떠나고, 인구가 줄어드는 곳에 교통, 문화, 교육 등 인프라가 발전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탓에 주민들은 인구 감소가 곧 인프라 부족으로, 다시 열악한 인프라가 인구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진 않을까 걱정한다.

사람이 사라진 곳에 그간 쌓아온 마을의 역사와 문화, 전통도 함께 사라지는 것 역시 두려운 일이다.

이들에게 청장년층을 마을로 다시 불러 모으는 일이 중요한 목표인 이유다.

이에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 뗏목 체험 등 외에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개발하고 있다.

지금 운영하는 줄배 타기, 트레킹 등에 더해 5천평가량 되는 부지에 꽃밭을 조성하는 계획도 세웠다.

최근에는 휴가지에서 일을 하고 휴식을 즐긴다는 '워케이션'(Worcation) 트렌드에 맞춰 젊은 층이 마을을 방문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고향으로 돌아온 이공계 출신 주민이 이력을 살려 온라인 홈페이지도 말끔히 정비했고, SNS를 활용해 대도시에선 볼 수 없던 천혜의 절경을 소개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 일부를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이들과 나누고 있기도 하다.

엄영호(62) 옹정리장은 "매년 쌀, 라면 등의 물품 200만원어치를 저소득층에 기부하고, 장학금 명목으로 쓰일 수 있도록 군에도 기부하고 있다"며 "많지 않지만,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수익을 쓸 수 있어 마을 주민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젊은 사람들이 마을을 많이 찾아올 수 있도록 고심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보존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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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 노 젓기 체험하는 관광객과 사공 [촬영 강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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